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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비대면 시대' 의사와 목사에게 듣는 코로나19와 교회(뉴스앤조이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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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20-07-13 11:26 / 조회 1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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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좌담]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남오성 목사 X 순천향대 서울병원 감염내과 전문의 김태형 교수
2020. 7. 10. 구권효 기자.
 
오늘(10일) 오후부터 정규 예배 외 모든 소규모 모임을 금지한다는 정부 발표에 교계는 어수선하다. 평소 정부 방침에 적극 동의하던 사람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5~6월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도권에서 다시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고, 교회 소모임을 통한 감염이 다수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 무엇보다 모두가 예측할 수 없이 길어지는 코로나19 상황에 지친 듯하다.

<뉴스앤조이>는 지금이 어떤 상황이고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료적·목회적으로 진단해 보기 위해 긴급 좌담을 마련했다.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감염내과 전문의 김태형 교수와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이자 경기 고양시 주날개그늘교회 담임 남오성 목사를 섭외했다. 좌담은 7월 9일 서울 중구 카페바인에서 진행했다. 두 사람은 허탈해하는 목회자와 교인들 모습에 공감하면서도,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어쩔 수 없이 맞는 상황이라면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보자고도 제안했다.

- 정부가 8일 교회를 특정해 정규 예배를 제외한 모든 모임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두 분은 이번 방침을 어떻게 보는가.

김태형 / 그동안 대다수 목사·교인들이 협조를 잘해 주었다. 그런 노력에 비해 정부가 교회를 콕 집어서 모임을 금지했다는 것은 나도 한 사람의 교인으로서 서운함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이 병 자체가 워낙 예측하기가 어렵다. 정부도 어떤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조치한다기보다는, 코로나19가 두렵고 많은 사망을 초래하기 때문에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 본다. 최근 수도권 집단감염에서 공교롭게도 교인들 수가 많았다. 전체 수도권 발병 건수 중 17%가 교회와 관련 있다. 이렇게 수치로 관련성이 나타나다 보니, 교회에서 방역 방침을 좀 더 잘 지켜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남오성 / 기본적으로 정부 방침을 이해한다. 교회를 매개로 감염이 빈번했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지금 다시 위험한 상황이라 느끼고 있다. 국민 보건 건강을 위해 정부가 애쓰는 게 맞다. 우리는 민주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정부 시책에 발맞추는 게 맞다고 본다. 여러 우려를 공감하지만, 큰 틀에서는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해 오던 것들 좀 더 신경 써서 하면 된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정부가 교회를 보호해 주는 것이다. 방역을 소홀히 하다가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면 사회에 신천지처럼 비칠 수 있다.

- 정부 발표가 있었던 당일 곧바로 주요 교단 연합체 한국교회총연합에서 반대 성명을 냈다.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예고한 목사들도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은 하루 만에 30만 명이 서명했다.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서운함 내지 허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남오성 / 나도 그렇게 느낀다. 처음 들었을 때 감정적인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왜 교회만 갖고 그러냐'는 것이다. 성당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는데, 카페나 식당에 사람이 드글드글한데. 결정적으로 이번 방침은 어기면 처벌받는다. 처벌 얘기 나오는 것 자체에 불쾌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애초부터 극우적 기독교인들은 정부 방역 대책에 반대해 왔지만, 대부분 기독교인은 잘 따라갔다. 그동안 힘들게 잘해 왔는데 알아주지도 않고 교회만 자꾸 타깃 삼는 듯하니까 피로감을 느끼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기분 나빴던 지점은 이것이다. 정규 예배가 어떤 것인지 왜 국가가 정의하는가. 그건 교단이나 교회가 자체적으로 정하는 거다. 여기서 더 나가면 헌법에 나와 있는 정교분리 원칙이나 종교의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고 반응할 수도 있다. '교회'라고 특정하지 말고 '상황'을 특정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면적 얼마의 공간에 얼마의 인원이 들어가서 하는 특정 행위를 삼가 달라고 했다면. 그러면 교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니까. 좀 더 보편적인 지침이었으면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어찌 됐든 지금은 '이성적 영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른 종교와 비교했을 때 교회 내 감염 사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타 종교 모임에 비해 교회 모임에서 접촉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방역을 끝까지 거부하는 교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태형 / 사실 현 정부 방역 방침은 한국 사회 문화적 특성과도 연관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 상황에 있지만 나라마다 대처는 다르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사람들 동선을 추적하거나 개인 정보를 사용한다거나 자가 격리를 강요하는 게 잘 안 될 걸 전제하고 정책을 편다. 그렇게까지 프라이버시를 억압하는 것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문화 때문에 수치심이라는 정서가 강하다.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비난받지 않고자 한다. 증상이 의심되는 사람에게는 자가 격리 등 엄격한 정책을 적용하기를 원한다. 확진자가 동선을 밝히지 않으면 전 국민이 분노한다. 이게 우리 정서다. 국민들이 계속해서 정부에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지침을 말하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못 따라간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게 많다. 최근 정부가 활동별 감염 위험도를 구체적으로 정의한 표를 만들었다. 그걸 처음 적용한 사례가 이번 방침 아닌가 생각한다. 상당히 우리 문화나 정서답게 만든 지침이긴 하다.

많은 선량한 종교인이 있는데 그분들의 노력이 폄하된 느낌이라 아쉽기는 하다. 목사님 말씀대로 정부가 정규 예배를 규정했다는 점도 부적절했던 것 같다. 정부가 함부로 종교 집단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아 충분히 불쾌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반대로 이렇게 되기 전에 교회가 좀 더 선제적으로 지침들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 식당·카페·노래방·클럽 다 여는데 왜 교회만 콕 집어서 문제를 삼느냐는 얘기에도 답해 주시면 좋겠다.

김태형 / 우리는 독재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 단위의 생활을 통제할 방법은 없다. 아마도 정부 입장에서는 통제 가능한 단위 집단을 지정해야 해서 교회가 지적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수의 선량한 분이 잘 따라 줬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어쨌든 최근 수도권 상황에서 많은 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전파됐다. 하나로 특정할 수 있는 집단이 교회였기 때문에, 그 집단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이번 방침이 나온 것 같다.

- 실제 5~6월 수도권에서 교회 모임을 통한 코로나19 감염이 많았다. 특이한 건 주일예배에서는 감염 사례가 적고 작은 모임에서만 생겼다는 점이다.

김태형 / 보통 공예배에서는 특정 교단이 아닌 경우 큰 소리를 내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모임에서는 마주 보면서 침이 튈 수 있는 밀접한 교제를 한다. 많은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거리가 가깝고, 얘기하면서 반드시 침방울이 튄다.

연령층도 연관 있을 수 있다. 이 병 자체가 고령층에 더 확산되고 증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교회에는 연세 있는 분이 많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 왔던 수많은 감염병 중 코로나19의 가장 무서운 특성은 '무증상 감염'이다. 멀쩡한 사람들끼리 모임을 해도 전파가 있을 수 있다. 횟수도 문제다. 교회 모임은 정기적으로 한다. 이런 요인들이 겹쳐 조금씩 위험이 강화되는 것이다.

- 그간 교회는 구역별로 나눠서 출석하게 한다든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한다든지, '드라이브스루' 심방을 하는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그런데 몇 달을 해도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지치는 것 같다.

남오성 / 일선 목회자들이 변화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목회적 문제를 풀어 나갈까 고민했다. 공통적으로 세 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그다음에는 여러 시도를 해 본다. 그러다가 한계를 느끼고 좌절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 공감해 주는 게 필요하다. 다들 힘들다. 나에게만 벌어진 일이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교회가 경험하는 문제다. 교회사를 보면 어느 시대든 전염병이 발생했지만 교회는 계속됐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고 좀 더 의연하게 반응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지금은 목회자 개인이 잔재주를 부려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목회자·교인·신학자 등 한국교회 구성원들이 공동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해 보니 어떻더라'는 경험을 공유하며 집단 지성을 활용하고 교류하는 게 필요하다.

-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가 모든 국민이 하고 싶은 가장 궁금한 질문이 아닐까.

김태형 /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건 사망자가 나오는 상황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연령대가 80대 이상이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이 25%다. 교회에는 연로한 분이 많다. 나라에서 가장 보호해야 하는 분들이다. 현실적으로 좀 더 엄격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모든 사회 집단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집단 면역'을 선택한 스웨덴 같은 경우는 좀 더 여유롭게 대처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스웨덴도 그게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거기는 한국처럼 강력한 조치를 하는 것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럴 경우 전체 인구의 60% 정도가 감염돼야 종식된다. 한국에서도 엄격한 거리 두기 말고 자연스럽게 하자고 하면, 5000만 명 중 3000만 명이 감염되고 600만 명이 사망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감염병이라는 게 결국은 어느 정도 시기를 지나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이 병에 면역력이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종식된다. 우리처럼 엄격한 정책을 펴면 사망률을 줄일 수 있는 대신 좀 더 길게 간다. 그걸 각오해야 한다. 감염내과 의사로서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거리 두기 기간을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할 수도 있다. 몇 달이 될지, 1~2년이 될지 모르겠다.

백신은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치료 약제도 마땅치 않다. 보통 의사들이 효능 있는 약이라고 할 때는, 약을 복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나야 한다. 그런데 지금 사용하는 약들은 치료 효능에 차이가 없다. 단지 병을 앓는 기간을 조금 단축해 줄 뿐이다. 우리도 중환자를 보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약이라도 써서 조금이라도 그분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다. 의사로서도 답답하다.

그렇지만 이때까지 인류가 발전해 왔던 걸 보면, 우리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치료제가 개발됐다. 예를 들면 에이즈 치료제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20년 만에 치료제가 나왔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도 노력에 의해 언젠가 치료제가 나오고 예방접종이 나올 거다.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코로나19는 우리만 잘한다고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유럽, 저개발 국가 등에서도 다 잡혀야만 우리도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그간 최선의 노력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코로나19 자체가 전 세계 몇 바퀴를 돌아서 올 수도 있는 병이기 때문에 장기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건 수도권 소규모 감염이다. 일단 지금은 이런 유행을 피해야 한다.

- 코로나19 상황이 정확히 언제 종식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인데. 비대면이 강조되는 시대에서 그간 교회의 본질을 '모이는 것'(에클레시아)으로 정의해 왔던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남오성 / 우리는 그간 교회에 모여 전통에 따라 의례를 거행해 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이걸 왜 하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는 이것저것 포기해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 게 중요하다. 본질이 뭔가. 너무도 당연해서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본질 아닐까. 가장 단순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가면서 비본질을 제거해야 할 것 같다. 종교개혁가들은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해야 하는 비본질이 많다고 느꼈고, 많은 것을 포기했다. 상대화했다. 그런 의미에서 늘 해 왔던 일에 '이게 맞나', '이걸 왜 하나' 질문하는 것은 종교개혁적 마인드다.

시간적으로 보면 그간 우리는 '주일'을 신앙의 핵심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게 맞나. 공간적으로는 '예배당'을 신령한 장소라고 생각해 왔다. 목사를 하나님과 신도들의 매개, 제사장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비본질을 상대화하면서 남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나는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당연해서 허무한 얘기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다. 그 틀에서 생각해 보자. 보통 신학교에서는 교회를 세 가지로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공동체.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어때야 하는가. 우리는 성령을 받아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면, 오히려 각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뭐하고 있었지?', '우리가 뭐 때문에 수련회를 하고 성경 공부를 했지?' 반성도 하고 본질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 사회적으로는 '뉴노멀'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신자들은 앞으로 일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김태형 / 뉴노멀이라는 건 정확히 정의해서 완성된 모습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언젠가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재난이 있었지만, 인류는 결국 이겨 내고 일상을 찾았다. 지금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뉴노멀은 우리에게 영원히 계속될 새로운 일상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문학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영웅적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의사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새로운 연구를 해서 성과를 가져오는. 나는 소극적인 편이라 내 일상에 충실하자는 편이다. '나에게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충실하면서 버티자.' 새로운 것들을 발명하고 선구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 모든 일을 겪어 내기 위해 정말 필요한 건 성실하게, 정직하게 자기 삶을 사는 더 많은 사람이다.

남오성 / 그동안 당위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필연이 될 것 같다. 그 전에는 '해야지' 했던 것들이 이제는 '안 할 수 없지'라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다. '고쳐야지 고쳐야지' 했던 건데, 지금은 더 이상 안 고치면 안 되는 상황이 왔다. 안 고치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을 고쳐야 할까. 첫째는 집중이 아니라 분산이다. 그간 교회는 집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한 장소로 집중된다. 교회 내 권력은 목사에게 집중됐다. 이제는 예배 주도권이 목사에서 교인에게 넘어갔다. 목사가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로 모이는 게 아니라, 교인들이 '목사님은 방송하세요. 제가 편한 시간에 볼게요'라는 상황이 됐다. 일선 목회자들은 불안할 수도 있다. 교인들이 본인의 권력과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다.

목사들은 이제 성장 목회 못 한다. 확산하는 목회가 될 수밖에 없다. 주일날 모이지는 못하지만, 교인들이 주중에 각자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나 점검하는 목회가 중요해질 것이다. 교인들도 그간 주일날 특정 종교 행위를 하느냐 안 하느냐로 신앙을 판가름했다면, 이제는 평일에 내 삶이 어떠한지를 봐야 한다. 신앙의 장소도 그 전에는 예배당이었는데, 이제는 가정·학교·직장이 될 수밖에 없다. 형식과 제도를 얼마나 잘 따르느냐보다, 신앙의 내용과 가치를 어떻게 살아 낼 것이냐, 어떻게 현실화할 것이냐가 중요해졌다.

두 번째는 규모가 아니라 내실이다. 우리 교인들과 자주 얘기하는 게, 유리창을 깨는 건 애드벌룬이 아니라 골프공이라는 말이다. 그간 한국교회는 애드벌룬이었던 것 같다. 덩치는 큰데 바람만 들어서 아무리 던져도 유리창이 안 깨진다. 하지만 조그만 쇠구슬이 유리창을 깬다. 작지만 내실 있는 교회가 살아남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강제가 아니라 자율의 목회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는 어느 정도 율법적 강제가 있었다. 그게 교회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됐다. '너 이거 안 하면 지옥 간다'면서 공포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제 신앙의 자발성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교인들의 자발적 소속감과 헌신이 있는 교회는 큰 문제 없이 유지되겠지만, 목사의 강압과 억누름으로 유지됐던 교회는 어려워질 것이다.

대단히 역설적으로, 가나안 성도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가나안 성도들은 어찌 보면 탈교회적 신앙을 먼저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지역 교회 근거한 신앙적 기반이 무너져 광야로 나온 사람들이다. 물론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가 신앙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 과정에서 신앙이 크게 성장한 사람이 있다. 방황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만의 신앙법을 찾은 것이다. 그간 한국교회 신도들은 너무 목사가 주는 것만 받아 오지 않았나. 자율적인 신앙으로 성숙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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