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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은 좋지만 세금은 몰라요 [시사인Live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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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4-08-27 15:01 / 조회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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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은 좋지만 세금은 몰라요

2015년부터 종교인 과세가 시행될 예정이었다. 법률 개정도 추진되었다. 그러나 8월6일 발표된 세법 개정안에서는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개신교계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박근혜 정부가 물러선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부터 ‘지하경제 양성화’의 한 방법으로 종교인 과세를 제안했다. 조세 형평성도 높이고 복지재정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당초 일정에 따르면, 내년(2015년)부터 종교인에게도 본격적으로 납세의무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법률 개정도 추진되었다. 드디어 8월6일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가 ‘2014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개정안에는 종교인 과세 내용이 말끔하게 빠져 있었다.

한국에서 종교인 과세 논란의 역사는 길다.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어떤 명분도 없지만 관행적으로 납세의무를 면제해왔기 때문이다. 반발에 부딪혀 논쟁만 하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교회나 사찰 같은 종교기관이 납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는 있다. 정교분리 원칙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기관에 종사하는 성직자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경우는 어느 정도 근대화가 진전된 국가 중에서는 한국밖에 없다(<시사IN> 제210호 “어린 양은 ‘유상’인데 목자는 ‘무상’이니” 기사 참조). 한국 세법에도 ‘납세의무에서 종교인을 제외한다’는 조항은 없다. 국세청이 직무를 방기해온 것이다.

<div align=right /><font color=blue>ⓒ시사IN 자료</font>한국 세법에는 ‘납세의무에서 종교인을 제외한다’는 조항이 없다. 성직자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경우는 근대화가 진전된 국가 중에서는 한국밖에 없다.
ⓒ시사IN 자료
한국 세법에는 ‘납세의무에서 종교인을 제외한다’는 조항이 없다. 성직자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경우는 근대화가 진전된 국가 중에서는 한국밖에 없다.


2000년대 중반부터 ‘종교인도 세금을 내자’는 사회운동이 시작되었다. 2012년 초부터 정부·여당도 종교인 과세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분위기 조성에 앞장섰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종교인 과세가 기정사실이 되었다.

종교계도 내놓고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천주교와 불교 성직자들은 이미 소득세를 내고 있거나 수용 의견을 밝혔다. 개신교 쪽에서도 보수 성향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외에는 대체로 수긍하는 눈치였다. 무상급식·무상보육 같은 복지정책을 ‘공짜 포퓰리즘’이라며 격렬히 비난해온 보수 성향의 개신교계가 다른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되는 국방, 경찰, 교통 등 공공 서비스를 ‘공짜’로 누리겠다는 것이 기이한 일이기는 하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시행을 목표로 종교인 과세의 입법화를 추진해왔다.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성직자들의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종교인들의 수입을 세법상 ‘근로소득’이 아니라 ‘기타소득’으로 분류했다. 이 같은 분류는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내게 되는 세금이 어느 정도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은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받는 돈이다. 특정 사업체에서 일하면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받을 수 있는 임금·상여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소득세가 이런 근로소득 전액을 기반으로 산출되는 것은 아니다. 근로소득 중 일부를 ‘삶에 필수적인 경비’로 간주해서 뺀(공제한) 다음, 남은 금액(과세표준)에만 일정 비율(세율)을 곱해서 소득세 규모를 결정한다. 연봉이 3000만원인 노동자의 경우, 연봉의 15%인 450만원을 제외하고 남는 2550만원(3000만원-450만원)에만 세금을 부과한다는 의미다(실제 과정은 좀 더 복잡하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생략한다). 이처럼 세율을 적용하기 전에 소득 전액 중 ‘제외하는 몫’을 ‘공제율’이라고 부른다. 공제율이 클수록 납세자에게 유리하다. 또한 소득이 적을수록 공제율이 높다. 현행 세법에서는, 총급여액이 500만원 이하인 근로소득자의 공제율은 70%에 달하지만, 500만~1500만원은 40%, 1500만~4500만원은 15%, 4500만~1억원은 5%, 1억원 이상은 2%다.

근로소득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원천징수’다. 사업체 측이 근로소득자에게 임금이나 상여금을 주는 경우, 미리 소득세를 뗀다. 덕분에 국세청은 근로소득자가 어느 정도의 돈을 버는지 훤히 알 수 있다. ‘월급쟁이’의 살림을 유리지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div align=right /><font color=blue>ⓒ사진공동취재단</font>박근혜 정부는 초기 조세 형평성과 복지재정 마련을 명분으로 종교인 과세를 기정사실화했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정부는 초기 조세 형평성과 복지재정 마련을 명분으로 종교인 과세를 기정사실화했었다.

이에 비해 ‘기타소득(종교인에게 적용하기로 했던)’은 한마디로 ‘어쩌다 번 돈’을 가리킨다. 우연히 줍게 된 남의 지갑을 돌려주고 받는 사례금, 현상수배자를 신고하고 받는 상금, 배상금, 강연료 등 일시적이고 우발적으로 들어온 수입이 기타소득에 해당된다. 기타소득의 공제율은 세법상 80%다. 1000만원의 기타소득이 들어왔다면 이 중 800만원을 제외한 200만원에 대해서만 세금을 낸다는 의미다. 납세자 처지에서는 근로소득보다 훨씬 유리하다. 지난해 11월 초 신설된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은 “종교 관련 종사자로서의 활동과 관련하여 받는 금품”을 기타소득으로 규정했다. 어떤 목회자가 특정 교회에 소속되어 일하며 매달 규칙적으로 월급을 받는다 해도(통상적으로는 엄연한 근로소득이다), 이를 기타소득으로 간주해 80% 공제율을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예컨대 연봉 1억원을 받는 회사원은, 2% (200만원)를 뺀 9800만원을 기반으로 ‘근로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같은 연봉의 대형 교회 목사는 80%(8000만원)를 공제한 2000만원에 대해서만 ‘기타소득세’를 납부하면 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낸 <2013년 세법개정안 분석>(2013년 10월 발간)은 “고소득 종교인의 경우 다른 고소득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 부담을 지게 된다”라면서 조세 형평성 원칙의 파괴를 우려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방안은 종교계를 크게 배려한 것이었다.

세법 개정안 원칙 중 하나는 ‘공평 과세’인데…

그럼에도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 개신교 측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성직자는 ‘대가를 얻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며, 신도들이 이미 세금을 내고 남은 수입으로 낸 헌금(이 중 일부가 종교인의 수입이 된다)에 다시 세금을 물리는 ‘이중 과세’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 국민 중 누구도 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다. 누군가의 수입은 다른 누군가가 세금을 낸 뒤 남은 돈으로 사용한 지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는 한국기독교시민총연합이라는 단체가 종교인 과세에 주도적 구실을 한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박근혜 정부는 다시 한발 물러섰다. 지난해 개정안에는 포함되었던 원천징수 조항을 삭제했다. 근로소득과 달리 종교인의 기타소득에 대해서는 각자 알아서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납부하라는 의미다. 가난한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근로장려금(EITC) 혜택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반발이 가라앉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난 7월 말 정부·여당은 일제히 ‘공감대 형성 미흡’ ‘시기 부적절’ 따위 발언을 쏟아냈다. 최경환 부총리는 “종교인 간에 먼저 컨센서스(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정희수 의원(새누리당)이 “종교인에게 과세할 경우 이중 과세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희수 의원실은 오보라며 “인터뷰 중에 이중 과세 이야기가 나와서 단지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라고 했는데 (종교인 과세에) 반대한다는 기사가 나와 곤혹스럽다”라고 <시사IN>에 해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정부의 최종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나서는 것이 적절하지 않아 관망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여야 모두 종교인 과세에 적극적이지 않다. ‘2014년 세법 개정안’에서 종교인 과세가 도려내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세법 개정안의 3대 원칙 중 하나는 ‘공평 과세’였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최호윤 회계사는 “기획재정부가 목회자들의 소득을 굳이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하려 했다면 먼저 소득세법을 개정한 뒤 이에 맞춰 시행령을 바꿔야 했다. 그러나 뭔가에 떠밀린 듯 시행령부터 바꾸고 법률 개정을 시도하면서 상황이 꼬여버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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