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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의 탄생 ④] 증오에 대한 죄책 고백, 88평화통일선언


강성호



2015년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평신도운동’, 2016년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이라는 주제로 일제의 강제점령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한국교회 안팎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교회개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봤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올해에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저항하며 개혁자의 길을 걸었는지,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저항의 길을 함께 걸어 봅시다.


글 싣는 순서
1. 예수는 어떻게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는가?
2. 교회 여성, 기생관광을 규탄하다
3. 기독 청년들의 교회개혁 이야기
4. 증오에 대한 죄책 고백, 88 평화통일선언
5. 천세용의 저항적 자살과 성공회 사제들



1980년대에 발생한 해외 기독교 통일운동


반공주의는 일종의 ‘증오의 정치’라 할 수 있습니다. 반공주의는 적대적 타자를 철저히 증오하는 걸 자양분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한국기독교가 반공과 복음을 동일시하면서 증오의 말들을 쏟아내기 바빴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한국기독교는 분단체제의 형성과 고착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진보적 기독교인들에게도 반공주의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반공의 목적이 조금 달랐을 뿐입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수호와 회복을 반공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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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이르면, 진보적 기독교 세력의 일각에서는 반공주의의 틀을 깨뜨리려는 시도가 일어났습니다. 독재정권의 안보 논리를 극복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민주화 운동은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이는 안보 논리의 구조적 요인인 분단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성찰로 이어졌고, 북한과의 대화를 전제로 삼는 통일운동이 펼쳐지는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러한 시도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용이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0년 해외 동포들은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이들은 북한에 통일에 관해 대화를 제안했고, 이는 1981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 간의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북측 대표 5명과 해외 동포 13명이 참여한 이 모임에서는 한국교회가 반공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해왔음을 반성하고, 분단에 대한 죄책 고백과 공산주의와 기독교의 화해 가능성을 천명하는 성명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성명은 한국기독교의 통일운동에 기본 틀을 제공한 중요한 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의 기독교 통일운동이 정점에 달한 때는 ‘1984년’이었습니다. 바로 일본 도잔소(東山莊)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정의와 평화협의회’는 한국교회와 해외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를 본격적으로 협의한 최초의 모임이었습니다. 일명 도잔소 회의라고도 하죠. 여기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분단의 해소와 통일이 남북한교회의 책임이라는 점입니다. 도잔소 회의는 한반도의 분단이 전쟁 위험, 독재와 인권유린, 경제 손실과 인간적 고통의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려면 분단 극복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도잔소 회의는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에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통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해자로서의 여정은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개최된 세미나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남북한의 기독교인들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장이 펼쳐졌습니다. 조선기독교도연맹(북한) 측 대표가 4명,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남한) 측 대표가 6명이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그 당시 남한 사회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북 민간교류의 첫 장을 연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기독교의 일각에서는 평화의 문제를 복음의 핵심적인 이슈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선언


1980년대에 해외에서 진행되어 온 통일 논의는 1988년 2월 29일에 발표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기독교회의 선언」(이하 88평화통일선언)으로 집약되었습니다. 이 선언을 통해 한국기독교는 분단 극복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88평화통일선언이 가장 중요한 점은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바탕으로 작성된 신앙고백이라는 사실입니다. 88평화통일선언은 지금까지도 흔치 않은 죄책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국기독교는 분단 이후 상대방을 미워하고 적대시한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죄책 고백으로 88평화통일선언은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특히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는 죄를 범했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계명을 어긴 죄이며 분단에 의하며 고통 받았고, 또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한 죄이며, 그들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지 못한 죄이다.”


한국기독교 역사를 돌이켜보면, 위의 고백에 적용되는 사례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우익 세력이 주도한 반탁운동에서는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결성한 ‘독립촉석기독교중앙협의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으로 대전에 온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대한기독교구국회’를 결성한 뒤 3,000여 명의 지원병을 모집하여 전선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1953년 6월에는 휴전을 대대적으로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전쟁 이후에도 한국기독교는 북진통일운동, 재일동포 북송반대운동 등 반공운동을 맹렬하게 전개했습니다. 88평화통일선언은 그동안 자신들이 증오의 언어를 뱉어냈던 모습을 기억하고 반성한 죄책 고백이라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한국기독교의 일각에서는 반공주의와의 결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88평화통일선언은 통일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7ㆍ4공동성명의 3원칙(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과 함께 ‘인도주의’와 ‘통일논의의 민주화’를 제시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통일을 위한 5원칙을 제창한 셈입니다. 또한, 88평화통일선언은 해방 50주년이 되는 1995년을 ‘희년’으로 선포하였고, 이를 통해 한반도에서 평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대목은 매우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88평화통일선언의 핵심인 죄책 고백이 부각되지 못한 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입니다. 1988년 3월 7일 북한의 조선기독교도연맹이 호의적인 입장을 밝히자 한국기독교의 보수 교단은 88평화통일선언을 전면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88평화통일선언이 주한미군과 핵무기의 철수를 주장한 데에 있었습니다. 일례로, 북한선교회는 88평화통일선언이 “주한미군 철수와 핵무기 철거 등을 외치는 북한의 상투적 선전을 그대로 인용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이는 88평화통일선언을 비판하는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88평화통일선언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달면서 제시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88평화통일선언은 한반도에 평화가 보장되고 이것이 강대국에 의해서 확인이 될 경우에만 철수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보수 교단과 단체의 왜곡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88평화통일선언의 내용을 주한미군 등의 철수가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으로 선전했기 때문입니다.


나가며


한반도의 분단은 남한이나 북한에 안보 이데올로기를 재생산시켰고, 이러한 안보 이데올로기는 정권의 강화와 유지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한국현대사의 수많은 비극은 사실 안보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반공주의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지난 반세기 이상 한국교회는 ‘샬롬의 신학’을 추구하기보다 ‘증오의 신학’을 외쳤던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적대적 타자를 증오하는 걸 신앙의 중요한 가치로 여겼습니다. 한국교회는 무언가를 반대하고 미워하는 태도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명해 준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타자에 대한 배제의 논리를 계속해서 펼친다면, 평화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사적으로는 탈냉전의 시대이지만, 분단체제로 인해 냉전 지역을 살아가고 있는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샬롬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배제와 혐오라는 우상을 섬기는 길을 따를 것인가 말입니다.


1980년대에 진행된 통일논의는 화해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한국기독교의 역사적 회심이었습니다. 이제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한반도에 증오가 아닌 평화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분단체제를 승인해온 자신들의 과오를 돌이켜보고, 평화와 통일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참 평화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건 순전히 개인의 내적 평안에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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