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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헌금 칼럼] 공적헌금2. 공교회적 헌금
교회 연합과 나눔


정성규 / 부천예인교회 담임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하나님께 드린 모든 헌금은 공적이다. 교회에 사적 헌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목회 현장에서는 공적 헌금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빈번하며, 대부분 교회 권력을 쥐고 있는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발생한다.

담임목사의 사적 사용

수도권 신도시에 600여 명이 모이는 한 교회가 있다. 이 교회 담임목사는 연 2억 4,000만 원을 가져간다. 교회 결산 보고서로는 이 사실을 알 수 없는데, 수년간 그 교회 재정부원으로 일한 안수집사와의 상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담임목사에게 월급 외에 담임목사 아내의 박사과정 학비와 경비, 결혼한 자녀의 대학원 교육비, 안식년을 대신해서 6개월마다 1,000만씩 지급되는 해외여행비, 도서비, 목회 활동비, 차량 운영비, 사택 운영비 등이 지급되었다. 이외에도 총회 임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경비 지출이 늘어나고 있었다. 대부분 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담임목사 마음대로 사용되었고, 영수증이 없는 경우도 흔했다. 소속 교단에서 중견급으로 주목받는 교회이지만 공적 헌금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대표 사례다.

과연, 중·대형 교회만의 문제일까. 상당수의 소형 교회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 아닐까.

교회 재정 상태와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지급하는 교역자 월급과 복지비는 '공적 헌금의 사적 사용'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친 경우가 비일비재하기에 한국교회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는다.

교회의 사적 사용

담임목사의 사적 사용 못지않게 교회의 사적 사용(헌금 개교회주의)도 문제다. 교회의 사적 사용에 대해 3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다.

첫째, 하나님나라는 교회 안에서는 물론 교회 밖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 이는 교회의 사명이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을 소외시키고 '자기들만의 천국'을 교회 안에서 만들기 위해 공적 헌금을 소비한다면 교회의 사적 사용이 아니고 무엇인가.

둘째, 교회의 사적 사용을 극복하려면 교회의 공교회성 회복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교회 연합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교회에서 교회 연합을 대표하는 것이 노회(지방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노회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보다 목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소속 교회의 건강성과 하나님나라(공평과 정의와 사랑)를 위한 연합 활동을 해야 하는데, 상당수의 노회는 개교회가 낸 노회비를 노회 임원들을 위한 행사비, 거마비, 여행비, 교단 정치 활동비로 소비한다. 이것 역시 교회의 사적 사용이다.

셋째, 교회는 약자, 가난한 자 등을 섬기기 위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미자립 교회에 무리한 나눔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자립한 모든 교회에 있어 나눔은 강제되어야 함에도, 여전히 부끄러운 수준에 그친다. 물론, 재정의 65%, 50%, 40% 이상을 나눔에 사용하는 교회들이 있다. 이들로 인해 한국교회가 가야 할 방향이 보인다. 하지만 나눔에 10% 미만, 심지어 3~4%만 사용하는 교회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은 많은 교회가 공적 헌금을 사적으로 사용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교회적 사용

500년 전 종교개혁 현장에는 두 개의 헌금함이 있었다. 사적 사용을 위한 '테첼의 헌금함'과 공적 사용을 위한 '루터의 헌금함'이다. 테첼의 헌금함은 교황이 탕진한 베드로성당 건축비를 채우기 위해 종교 사기꾼 알브레히트에게 '8년간의 면죄부 판매 권리'를 줌으로 시작되었다. 알브레히트에게 고용된 요하네스 테첼은 헌금함에 동전을 넣고 면죄부를 사면, 자기 죄는 물론 연옥에 있는 부모의 죄까지 사해진다고 선동했다. 우매한 대다수 사람이 현혹됐고, 그렇게 거둬들인 돈을 사기꾼과 교황이 사적으로 사용하였다. 반대로 루터의 헌금함은 약자, 가난한 자, 고아, 과부, 긴급 재난을 당한 사람을 위해 사용할 목적으로 놓였다. 루터의 헌금함은 교회는 물론 시민사회가 함께 관리하였고, 헌금으로 교회와 사회가 연합해서 나눔을 구현하는 공적 헌금의 역사적 실체가 되었다.1)

종교개혁 정신을 따르는 한국교회가 테첼의 헌금함이 아닌 루터의 헌금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헌금 사용이 루터의 헌금함보다 테첼의 헌금함의 쓰임새에 가깝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매우 마음이 아프다.

종교개혁의 기치인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을 통한 은총으로', '만인 제사장직'은 지금도 한국교회가 외치는 구호이다. 같은 구호를 외치지만 한국교회가 루터의 헌금함이 아닌 테첼의 헌금함을 갖고 있다는 이율배반의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진정한 회개는 먼저 주머니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했다. 공적 헌금의 사적 사용에 익숙한 자들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듣기조차 싫겠지만, 한국교회가 살아나려면 반드시 공적 헌금의 사적 사용이 사라져야 하고, 헌금이 공교회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교회 안팎의 나눔과 교회 연합이 일어나야 한다.

작지만 알차게

수도권 신도시에 1년 재정이 3억 원 정도 되는 교회가 있다. 그들은 '운영비 30~35%, 교역자 월급과 복지비 30~35%, 공교회성을 위해 30~40%'라는 재정 운영 원칙을 갖고 있다. 완벽하지 못하지만 나름 교역자만을 위한 교회, 교인들만을 위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동체 고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교회 연합과 차상위 계층을 위해 매년 헌금의 30~40%를 사용하려고 교인들이 머리를 맞대며 다양한 사업을 한다.

주변에 교회 다니는 이웃들이 "뭐 하러 고생하며 교회를 다녀"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작지만 알차게 하나님나라를 세워 가는 현장에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큰 교회라고 하더라도, 공적 헌금이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다면 그 교회는 사유화된 교회일 뿐이다. 예수께서 유대교를 사유화한 종교 권력과 형식적인 유대주의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마 12:34)이라고 일갈하셨듯, 오늘날 교회를 사유화하고, 공적 헌금의 사적 사용을 당연시하는 모든 담임목사와 교회에게 "테첼의 자식들"이라고 하지 않으시겠는가.

공적 헌금을 교회 안팎의 나눔과 교회 연합에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근간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각주
1) 김동민, '테첼의 헌금함 VS 루터의 헌금함', 교회개혁실천연대 <공감> 2017년 6월호. 루터의 공동 금고와 헌금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최주훈 목사(루터중앙교회) 저서 <루터의 재발견>(출간 예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회개혁연대_웹자보 (1).jpg

[공적헌금 포럼]

- 제목: 모두를 위한 헌금, 공적헌금 / 헌금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포럼
- 일시: 2017년 9월 11일(월) 오후 7시
- 장소: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4층 세미나실(2호선, 6호선 합정역 7번 출구)
- 문의: 교회개혁실천연대(02-741-2793)


- 이 글은 뉴스앤조이 2017년 9월 1일(금)자에 실렸습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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