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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단상] 사회에서 존경받는 교회가 되려면


                                                                                                                                   백종국 공동대표


역대 정부들이 출범하여 각 부처의 장관들을 등용할 때면 언론 매체와 사회관계망에서 다양한 하마평들이 무성하다. 최근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의 여론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발견되는 위장전입이나 탈세행위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를 구성할 시간도 없이 취임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대통령은 좀 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인물들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와중에 기독교인으로서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각종 직위의 후보자 프로필이 소개될 때에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설명이 들어가면 매우 부정적인 댓글들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개독교는 싫어”라든지 “기독교인만 아니라면 좋았을 텐데”와 같은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다. 1960년대와는 정반대이다. 그때 불신자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나는 안 믿지만 너라도 교회에 나가라, 가서 좋은 것들을 많이 배워 와라” 하며 격려하곤 했다. 한국 기독교는 지금 사회적 존경의 대상에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옮아가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온갖 핍박 속에서도 존경받는 삶을 보여 준 믿음의 선배들에게 죄송한 일이다. 그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를 일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에 대해 이미 많은 분석과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어떤 이는 이것이 일부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호들갑스럽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한국의 주요 종교인 불교와 가톨릭의 경우에는 이러한 사회적 지탄의 현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한국교회 신뢰도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은 개신교보다 가톨릭과 불교를 더욱 신뢰하고 있다. 왜 한국의 개신교가 최근에 와서 사회의 지탄을 받는 존재가 되고 있을까?


한 가지 예로서 한국 개신교가 불의한 세력을 지지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겨울 국정농단 혐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았다. 탄핵찬성과 탄핵반대를 둘러싸고 대규모 시위와 의견 개진이 있었고, 한국 기독교인들도 각자 자신의 양심대로 이러한 정치 행위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탄핵 반대에 참여한 기독교인 중에서 극렬한 찬송과 기도, 십자가 등의 기독교적 상징을 노골적으로 정치투쟁에 동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한기총과 같은 연합단체의 이름을 도용하여 한국 개신교가 탄핵반대세력의 지지자인 양 행세하였다. 결과적으로 탄핵에 찬성하는 대다수의 국민에게 한국 개신교는 맹목적으로 불의한 정권을 지지하는 자들이라는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가 매우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동성애 문제를 들 수 있다. 동성애는 거의 모든 고등종교들이 다 반대하는 일탈 행위이다. 기독교만이 금지하는 행위가 아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도 동성애를 혐오하는 편이다. 지금 진행되는 논의의 핵심은 동성애에 대한 찬반 여부가 아니다. 동성애를 이유로 사회적 차별을 가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다수 시민은 동성애에 반대하지만, 사회적 차별 또한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많은 기독교인도 이러한 판단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연합단체들이 ‘가짜뉴스’와 함께 왜곡된 가르침을 SNS로 퍼트리면서 극렬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 때문에 한국의 개신교는 지금 동성애자들 못지않게 혐오스러운 집단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한국 개신교가 일반 사회에서도 보기 힘든 지도자의 세습이나 성범죄와 같은 비윤리적 뉴스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는 점도 교회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원인이다. 일반사회에서도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이나 한국 재벌의 경영권 세습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목회를 어떤 목사 가족이 세습한다는 것은 교회의 속성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조차도 비난할 수밖에 없는 비윤리적 행위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일부 대형교회들이 여전히 온갖 이유를 동원하면서 세습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의 파렴치한 악덕이 한국 개신교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중이다.


한국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존경을 받으려면 교회가 먼저 사회보다 높은 윤리적 기준을 실천해야 한다. 당연히 하나님의 성품인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일반 사회보다 더 많이 실천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정의, 보편적 복지, 인권 보호 등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구체적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막상 하나님 성품의 실천에 있어서 일반 사회인들보다 더 부실한 것이 바로 기독교인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이유이다.


한국 교회는 정통 복음에서 어긋나는 자들을 멀리해야 한다. 오직 개인적 구원의 확신을 얻는 것이 신앙의 목표인 것처럼 교인들을 오도하는 자들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들은 구원파라고 부르는 이단이거나 몸은 정통파 교단에 속해 있지만 사실상 이단적 사상을 가진 자들이다. 구원은 윤리의 실천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어진다는 교리를 남용하여 윤리의 실천을 등한시하는 가르침도 종교적 사기꾼의 주장이다. 오직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주일 성수, 헌금, 기도회 참석, 심지어 목사 대접 등 종교적 행위에 몰두하는 것을 복음적 실천이라고 가르치는 자들도 멀리해야 한다. 이들은 주님께서 맹렬히 꾸짖으셨던 바리새적 전통을 따르는 자들이다. 가짜뉴스로 교인들을 현혹하여 정치적 투쟁의 자리로 이끌어내는 자들도 멀리해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탄의 무리이다.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의 존경을 받으려면 교회 체제의 구조적 개혁도 필요하다. 교회의 정관에 직분의 임기제, 의사결정의 민주화, 재정의 투명성 보장을 명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노회와 총회 등 각종 광대회의체가 나이 많은 남자 노인들만으로 구성되지 않도록, 순전한 복음의 보존이라는 원래의 목표에 적합하도록 대폭적인 구조 변화를 채택해야 한다. 이미 사회는 참여민주주의 체제를 구현하고 있는데 교회 정치만 수 세대 전의 낙후한 형태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거룩한 복음은 깨끗한 그릇에 담아야 한다.


사회의 존경을 받음으로 전도의 문이 열리고, 사회의 지탄을 받음으로 전도의 문이 닫힌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명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사회의 존경을 받는 것은 주변적 관심사항이 아니고 사활적 관심사항이다. 한국 교회가 이 일에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65호 소식지에 실렸습니다.
∗ 글쓴이 소개: 2002년 11월 개혁연대 창립부터 공동대표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2003년 모범정관을 연구・발표하고 정관을 통한 민주적 교회 운영을 주창하며, 한국교회의 잘못된 구조를 개혁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진주 주님의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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