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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의 탄생 ①] 예수는 어떻게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는가?


강성호


2015년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평신도운동’, 2016년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이라는 주제로 일제의 강제점령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한국교회 안팎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교회개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봤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올해에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교회와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저항하며 개혁자의 길을 걸었는지,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저항의 길을 함께 걸어 봅시다.


글 싣는 순서
1. 예수는 어떻게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는가?
2. 교회 여성, 기생관광을 규탄하다
3. 기독청년들의 교회개혁 이야기
4. 증오에 대한 죄책 고백, 88 평화통일선언
5. 천세용의 저항적 자살과 성공회 사제들


민족의 수호자에서 반공의 상징으로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예수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의 사복음서에 기록된 그의 삶과 사상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마어마한 영감을 불러일으켰죠. 그의 제자들이 쓴 편지들은 신약성서의 후반부를 차지하면서 예수의 사상을 교리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는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근거이자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신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잘 알려진 사실이 있습니다. 신약성서는 공통적으로 예수를 다루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서사의 방식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가령 마가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수난을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이는 유대-로마 전쟁(A.D 66-70)으로 고통당하는 자신의 공동체를 신앙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약성서의 절반을 차지한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과 수난사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이는 이방인 청중들에게 예수 사건의 보편성을 역설해야 했기 때문이죠. 성서신학에 대한 지식이 짧아 더욱 엄밀한 이야기를 하기 힘들지만,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자신들이 처한 다양한 삶의 정황 속에서 예수 이야기를 재구성했음은 분명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이야기는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식민지-분단-전쟁-독재로 이어지는 시공간에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적 소망을 예수에게 투영했습니다. 즉, 예수의 서사와 이미지는 정치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동원되고 전유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의 역사를 깊이 있게 살펴보려면, 예수 이야기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독교가 조선에 수용된 시기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때와 겹칩니다. 그러다 보니 혹자는 복음을 전한 내한 선교사들을 제국주의자라고 비판합니다. 이 부분은 한국기독교의 역사와 관련하여 중요한 쟁점 사항입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점은 주요 침략국가(일본)와 선교국가(미국)가 불일치했다는 사실입니다. 동아시아의 기독교 역사에서 조선만이 가진 특징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침략국가와 선교국가가 일치해서 선교사들이 많은 곤혹을 치렀습니다. 반기독교를 내세운 중국의 의화단 운동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덕분에 조선을 방문한 미국 선교사들은 ‘양대인’으로 불리며 선교 사업을 원활히 펼칠 수 있었습니다.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듯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제국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합니다. 이 사건은 대한제국이 1910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까지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국권회복운동에 동참합니다. 이만열 교수님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동료 중에는 우덕순이라는 그리스도인도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은 예수를 침략자 일본을 물리치고 민족을 부활케 하는 수호자로 호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예수 이해는 식민지 시대를 살다간 기독교 민족주의자들과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1930년대 중반을 전후로 동아시아가 전쟁터로 바뀌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일으킨 제국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병참기지로 활용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총력전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은 파시즘과 군사주의 논리를 내면화하게 됩니다. 제국일본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반공주의의 언어를 배우게 됩니다. 무언가를 반대하고 미워하는 태도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게 된 것이죠. 성결교회의 원로인 이명직 목사는 성서적 서사를 동원하여 반공주의를 정당화합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 세력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붉은 용이라고 얘기합니다. 이후 붉은 용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기독교적 기표가 되었습니다.


  해방 후 월남 기독교를 대표하게 된 한경직 목사는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을 당한 이야기를 반공주의에 동원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마귀의 시험을 공산주의로 비유했습니다. 돌을 떡으로 바꿔 보라는 마귀의 시험에 예수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한경직 목사는 예수의 이 대답을 인용하면서 공산주의를 비판합니다. 


 예수의 서사가 반공주의로 동원되는 경우는 이밖에도 더 있습니다. 황은균 목사는 누가복음 22:35-38에 등장하는 예수의 가르침(“검을 사라”)을 공산주의와의 투쟁으로 해석했습니다. 예수의 서사를 이념적으로 전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냉전 시대에 엿볼 수 있는 우리의 흑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담론 


  그렇다고 예수 이야기가 부정적으로만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한국기독교의 역사에서 1960년대는 불의에 저항한 그리스도인들이 등장한 시기입니다. 1960년 4월 혁명의 발발은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을 주었죠. 12년 동안 지속된 이승만 정권하에서 부정선거에 협력하고 교권을 둘러싸고 분열을 일으킨 것에 대한 자기반성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불의에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예수의 서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나는 누가복음 4:17-19에 수록된 예수의 나사렛 선언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빛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이사야 61장에 적힌 내용을 예수가 행동강령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사실 누가복음은 한국기독교의 역사와 인연이 깊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최초의 성서가 바로 누가복음이었기 때문이죠. 만주에서 존 로스 선교사가 의주 상인들과 함께 작업한 결과입니다. 이들의 누가복음 번역은 일본에서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과 함께 초기 한국교회의 토대를 만드는 게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군사독재 시대에 누가복음 4장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참여에 중요한 동기를 제공하거나 근거가 되었습니다. 1970-80년대에 여성노동자들의 고난을 함께 했던 도시산업선교회는 누가복음 4:17-19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고통당하는 자들의 이웃이 되었던 도시빈민선교, 민중교회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노동자들의 편에 서게 했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준다는 말은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된 이들의 석방을 주장하게 했으며, 눈먼 자에게 빛을 준다는 말은 민중의 의식화를 의미했고,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준다는 말은 인권운동을 펼치게 했습니다. 오죽 했으면 보수신학의 산실인 <신학지남>은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눅 4:18만을 교회 존재의 이유 전부인 양 주장해 왔다”고 비판할 정도였겠습니까. 


 성서를 현실 정치에 적용하는 방식이 아주 직설적이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은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자적 전통을 도출하는 데 아주 중요한 본문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서사 중 부활도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예수의 부활은 민주주의의 역사적 부활을 바라는 이들에게 희망으로 작용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73년 4월의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고 영구집권체제를 구축한 뒤였습니다. 평소 도시빈민선교를 통해 자주 만났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남산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 때 민주주의를 호소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의 시도는 거의 실패로 끝나 버렸습니다. 하지만 약 3달 뒤에 이들은 유신정권에 의해 ‘내란예비음모죄’를 적용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혀 상상하지 못한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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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은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는 데 유용한 몇 가지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지면관계상 이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사건을 계기로 유신반대운동의 본격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예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리는 공간에서 저항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습니다. 1977년 기독청년들이 부활절 연합예배를 거행할 때, 전남에서 온 이들은 청년 예수의 발자취를 뒤따르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에는 국민의 기본권과 생존권, 선교의 자유, 구속 인사의 석방 등이 함께 언급되었습니다. 결의문을 낭독한 기독청년들이 형사들에 의해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부활절에는 자본의 착취로 고통당한 노동자들의 호소도 이어졌습니다. 1978년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동일방직의 노동자들은 “노동3권 보장하라”, “동일방직사건을 해결하라”, “산업선교회는 빨갱이가 아니다” 등을 외치며 시위를 하다 예배방해죄라는 명목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이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이었는데, 부활절 연합예배를 생중계하는 전국 방송에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복음이 공장에서 어떻게 묵살되고 있는지를 알리고자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교회가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나온 ‘돌들이 소리치는 현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민중신학자 서남동은 예수의 부활을 이해하려면 4월 혁명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4월 혁명은 억압된 민중이 그 억압을 격파하고 민중이 자기의 주도권을 되찾은 부활 사건이라는 설명입니다. 그가 보기에 예수의 부활과 4월 혁명은 서로 조명되어야 참뜻과 정체가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현대사의 맥락에서 예수의 부활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우리가 한번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4월은 한국현대사의 수난을 함께한 시기였기 때문이죠. 단독정부의 수립에 맞서 일어난 제주 4․3항쟁,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저항한 4월 혁명,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16까지. 예수의 부활이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희망이 되려면 그리스도인들은 역사 속에 철저히 세속화되어야 합니다. 이웃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 그들의 고난을 함께 하는 ‘세속화된 교회’야말로 절망의 시대에 교회가 희망이 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 글쓴이 소개: 강성호 님은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 현대사를 공부했고, 학창시절에 장로교회(고신)와 학생신앙운동(SFC)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일반 역사학의 관점에서 기독교 역사를 어떻게 재평가하고 서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고, 지금은 전남 순천에서 아내와 함께 골목 책방 <그냥과 보통>을 운영하면서 집필 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한국 기독교 흑역사』(열두 가지 주제로 보는 한국개신교 스캔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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