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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 ③] 교회에서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왠 말인가?



김일환 목사


2015년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평신도운동’이라는 주제로 다섯 편이 연재되었고, 올해부터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이라는 주제로 다섯 편의 글이 연재되는데요. 일제의 강제점령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한국교회 안팎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교회개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선교사와 한국 기독교인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개혁하려는 시도, 교회 안에서 남녀차별 문제의 철폐와 평신도의 주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장애인도 동등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임을 알리는 운동, 일제의 황국신민화에 굴복하여 협력한 기독교인들의 모습과 그 후의 행동 등을 담을 예정입니다. 이 글들이 현재의 한국교회사를 삶으로 쓰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개혁을 위하여 분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싣는 순서
1. 예수교 자유교회를 아십니까?
2. 조선 교인은 선교사의 하인(下人)이 아닙니다.
3. 교회에서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웬 말인가?
4. ‘훈맹정음’과 박두성
5. 변절과 변명 사이에서 교회개혁을 생각한다.


 
 “하나, 예수께서는 자유와 평등을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오늘의 기독교 내에서는 너무나 계급과 차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령 연회나 총회라 함은 예수교 내의 전부를 의미하는데 어찌하여 남전도인만 모이는 집회가 되었나요? 둘, 교회를 위하여 힘쓰고 애씀이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만 남전도인은 주택이 있어도 여전도인은 없으니 이것도 금년부터는 전도부인이 방을 얻으러 다니지 않도록 하면 어떨까요? 셋, 교회학교 교사는 주일학교 사상이 있는 사람이 했으면 합니다. 넷, 처음에 전도사로부터, 목사, 장로까지 올라가는 사다리를 젊어서나 늙어서나, 처음이나 나중이나, 좋으나 그르나 20-30여 원(편집자주-당시 전도부인 혹은 여전도사의 월급)의 전도부인은 바라만 보지만, 진리로 따진다면 자유니 평등이니 하드래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요.”
 
  이 글은 춘천에서 활동하던 감리교 여전도사 최경자가 1930년 1월 1일 『기독신보』에 쓴 “여전도인의 불평과 희망(1)-네 가지 차별”이라는 글입니다. 길지 않은 이 글 속에는 당시 전도부인 또는 전도사로 일하던 여성교역자의 열악한 상황이 나타나 있는데, 여성교역자에게는 교회에서 사택도 제공하지 않았고 남성교역자가 80-100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것에 비해 20-30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일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 한 편을 통해서도 당시 교회 안에서 여성이 얼마나 차별 받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여성의 정당한 권리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때는 1920년대입니다. 특히 직제상 지위 문제와 관련해서 남성 위주의 직제(직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도 1920년대 초반부터입니다. 그래서 장로교회는 1922년에 여집사 제도를 신설합니다(물론 안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감리교회는 1930년 12월 남, 북 감리교회가 합동하여 기독교조선감리회 제1회 총회를 한 후 1931년 8월에 여성 선교사 14명을 목사로 안수했습니다. 비록 한국인 여성은 제외되고 선교사들만 안수받은 것이지만 당시 미국감리교회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을 한국감리교회가 먼저 실행했으니 이렇게 보면 당시 감리교회가 장로교회보다는 여권문제에 있어서 진취적인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교회 안에서 여성차별은 계속되고 있었고, 1930년대 들어서는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면서 차별을 철폐하려는 활동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독신보』는 1930년 1월부터 “여전도인의 불평과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면서 교회에서 여성차별의 현실을 드러내고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대안들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33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2회 총회에 여성장로를 허락해 달라는 청원이 제기됩니다. 이 청원은 함남노회에서 헌의했는데, 이 헌의안과 함께 함남노회 여전도회 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함흥중앙교회 여전도회 회장 최영혜를 비롯한 103명이 서명한, 여성에게도 치리권을 달라는 청원서가 함께 제출되었습니다. 함남노회 여전도회 연합회가 노회를 통하여 총회에 청원서를 제출한 이 사건은 교회의 직제개혁을 통하여 교회 내의 여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최초의 집단적인 항의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헌의에 대해서 총회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요? 당시 총회 헌법 정치 제5장 3조에 있는 장로의 자격은 27세 이상 남자 입교인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총회는 그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전제했습니다. 결국 이 시기에 교회적으로 제기되고 있던 여성차별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총회는 경청하려는 태도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여성의 치리권 요구에 대한 당시 장로교회의 이런 대처는 한국장로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미국 북장로교회의 변화와도 다른 모습입니다. 미국 북장로교회는 1930년에 여성장로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런 결정은 한국장로교회에도 알려졌고 그래서 193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1회 총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질문이 제기됩니다. 당시 경안노회에서 “미국 북장로회에서 여장로를 세운 것은 어느 성경에 근거하였으며, 동일한 신조 아래에 있는 우리는 왜 다르게 해석하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이에 대해서 총회에서는 미국 북장로교회의 결정은 한국장로교회가 상관할 것이 아니며 한국장로교회는 여성장로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이와 같은 장로교회 총회의 차별적이고 폐쇄적인 결정에 대해서 함남노회 여전도회 연합회가 가장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1933년 제22회 총회에서 여성장로 헌의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후에도 이듬해인 1933년에 22개 교회, 639명 교인의 서명을 받아서 여성장로 청원서를 함남노회에 다시 제출합니다. 그러나 노회는 매년 이 문제를 총회에 헌의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총회에 이 안건을 청원하지 않습니다. 당시 장로교회 안에서 진취적인 입장을 취했던 함남노회도 총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계속해서 거스르는 일은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함남노회 여전도회 회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직제 개혁을 통한 여성차별 철폐운동을 계속합니다. 특히 채정민 목사가 1934년 8월 22일 『기독신보』에 “정통의 교회도 속염(俗染)은 가외(可畏): 여자에게 언권 없다”라는 글을 기재하자, 최영혜는 1934년 9월 5일 『기독신보』에 “채정민 목사의 ‘여자에게 언권 없다’에 대하야”라는 반박글을 실어서 그를 비판했습니다. 이 글에서 최영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치리권을 가져야 하는 이유 네 가지를 제시했는데, 첫째는 주님의 사명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장로교인 26만 명의 3분의 2 이상이 여성이므로 이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여성강도사가 필요하고, 셋째는 여성을 치리할 때는 여성을 잘 아는 여성 장로가 치리회에 참석하여야 하며, 넷째는 여성이 각기 받은 성신(성령)의 은혜를 표현하려 해도 강도권(설교권)이 없어 이를 표현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사에서 교회 내 여성의 권리 문제를 제기한 대표적인 인물로 김춘배 목사를 많이 거론합니다. 당시 함중노회 소속 성진중앙교회에서 시무하던 김춘배 목사가 1934년 8월 22일 『기독신보』에 “장로회 총회에 올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쓰면서 여권 문제와 관련하여 장로교회 총회를 비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춘배 목사의 이런 행동은 당시 함남노회 여전도회를 비롯한 함경도 지역 여성 교인들의 여성차별 철폐운동에 영향을 받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남노회 여전도회를 비롯한 당시 여성 교인들의 교회 내 여성차별 철폐운동은 수십 년이 흐른 후에서야 가시적인 열매를 맺게 되었지만 교회 안에 깊게 뿌리내린 남존여비 의식과 차별적인 제도에 항의하는 이런 노력과 운동은,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 교회개혁운동의 주춧돌 중 하나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 1~2화는 홈페이지-칼럼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 글쓴이 소개: 김일환 목사는 장로교(예장 통합) 목사로 동국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공부했고, 서울장신대학교, 성공회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등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서울장신대학교 박사 과정(한국교회사 전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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