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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 1]

 

예수교 자유교회를 아십니까?

김일환 목사

   

2015년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평신도운동이라는 주제로 다섯 편이 연재되었습니다. 올해부터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운동이라는 주제로 다섯 편의 글이 연재되는데요. 일제의 강제점령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한국교회 안팎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교회개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선교사와 한국 기독교인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개혁하려는 시도, 교회 안에서 남녀차별 문제의 철폐와 평신도의 주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장애인도 동등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임을 알리는 운동, 일제의 황국신민화에 굴복하여 협력한 기독교인들의 모습과 그 후의 행동 등을 담을 예정입니다. 이 글들이 현재의 한국교회사를 삶으로 쓰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개혁을 위하여 분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싣는 순서

1. 예수교 자유교회를 아십니까?

2. 조선 교인은 선교사의 하인(下人)이 아닙니다.

3. 교회에서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웬 말인가?

4. ‘훈맹정음과 박두성

5. 변절과 변명 사이에서 교회개혁을 생각한다.


    


 

한국장로교회 최초의 공식적인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1928)에 보면, 총회가 조직되기 전인 독노회(獨老會) 시기에 전라대리회의 상황을 기록하면서 마지막에 이단(異端) 항목을 기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풀어서 옮겨 보면 “1910년 목사 최중진이 자유교(自由敎)를 주창하매 태인, 부안, 정읍, 임실 등 각 군 교회가 부화하여 전북교회에 큰 동요와 근심이 일어나니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입니다. 최중진 목사가 자유교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단으로 정죄된 것 같기는 한데 그가 주장한 내용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되었는지는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1910년이면 한국장로교회가 처음으로 독노회를 설립한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서 최중진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된 일은 매우 큰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최초의 이단 규정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중진 목사는 1910918일에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회 노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그 당시 노회록을 풀어서 옮겨 보면 회중이 최중진 씨의 사건을 제의하므로 기도하기를 동의하여 그렇게 결정하였다. 박정찬 씨가 최중진 씨에게 편지하기를 동의하므로 회중이 편지위원으로 김종섭, 방기창, 길선주 등 세 명을 택하는 것에 찬성하여 결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회의에서 보고되는 내용을 보면 최중진 목사가 소속되어 있던 전라북대리회에서 이미 그를 휴직시켰음을 알 수 있고, 전라북대리회의 이런 결정에 대하여 최중진 목사가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노회에서는 서신을 통해 그를 설득할 편지위원 세 명을 선정하였지만 실제로는 대리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그의 목사직을 정지시킵니다. 과연 최중진 목사는 어떤 이단적인 언행을 하면서 자유교회를 세워 대리회에 반기를 들었기에 결국 이단으로 규정되었을까요?

 

최중진 목사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1908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190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회 노회에서 호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순천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하던 중에 미국 남장로교회 소속 테이트(L.B. Tate) 선교사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테이트 선교사의 조사(助事)가 되어 태인, 정읍, 고부, 부안을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하였고 정읍 최초의 교회인 매계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최중진 목사의 영향력은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중진 목사는 191015일에 열린 전라북대리회에 자신의 요구를 담은 편지를 제출합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입교(入敎)를 원하는 새신자인 원입교인을 교육시킬 때 너무 엄격한 기준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학습을 받고 있는 교인들이 낙심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그 기준에 억지로 맞추기 위해서 거짓말까지 하는 역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최중진 목사가 맡고 있는 목회 지역을 확장시켜 달라는 것으로, 부안지역과 신경운 조사가 맡은 지역을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담당하는 군산 지역에 합하지 말고 자신이 맡고 있는 지역에 편성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셋째는 최중진 목사가 담당하고 있는 선교 지역에 고등학교를 세워 달라는 요구였는데, 남장로교회 선교부가 교육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넷째는 교회마다 구제를 결정하는 상구(常救)위원을 두 사람씩 임명하자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그동안 선교사들이 구제에 대한 결정을 일방적으로 해 온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는 주택 문제 및 경제적 문제를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이것은 선교사의 경제 형편과 한국인 목회자 및 조사들의 경제 형편의 격차가 심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습니다.

 

이와 같은 최중진 목사의 요구사항은 결국 전라북대리회를 이끌던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을 향한 것이었고, 그 핵심은 선교사들의 일방적인 지도와 결정에 한국인들은 그저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인들도 함께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선교사와 한국 기독교인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최중진 목사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이었습니다.

 

그러면 전라북대리회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안타깝게도 최중진 목사의 요구에 대하여 배은(背恩)”, “배약(背約)”, “분쟁”, “지각없음”, “불복종이라고 비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런 결정은 당연히 선교사들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당시 선교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전도하고 지도하여 목사까지 되게 한 최중진 목사의 요구는 그야말로 심각한 반항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물론 선교사들의 이런 결정의 근저에는 한국교회와 교인들에 대하여 선교사들이 변함없이 선생이나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한국 기독교인들을 어린아이로 봤다는 말이지요. 선교사들의 그런 의식은 문화적, 인종적 배경과 선교지인 한국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것이기에 선교사들만을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와 교인들을 말 잘 들어야 하는 어린아이로 보는 시각을 고집한 채 최중진 목사의 개혁적인 요구를 거부하고 결국 그의 목사직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내린 일은 지나치게 편파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대리회의 결정에 대해 최중진 목사는 항의서한을 보내면서 대한예수교자유교회 목사 최중진이라고 서명하였는데, 이 서명을 근거로 자유교를 주창하여 큰 동요와 근심을 일으킨 이단적 인물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교회 역사상 최초의 이단이라고 지목당한 최중진 목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단적 사상과 언행을 일삼았다고 평가하기에는 억울한 면이 많습니다. 오히려 한국교회 초기에 선교사와 한국 기독교인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개혁하려고 노력한 최초의 한국인 목회자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최중진 목사가 사용한 대한예수교자유교회라는 명칭 속에 담긴 선교사들에게 종속적이지 않은 자유로운 한국교회, 자유로운 한국 기독교인에 대한 그의 소망이 드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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